[독거일기 #2]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 
      - 에밀 자토펙, 1952년 헬싱키올림픽 육상3관왕(마라톤, 5천미터, 1만미터), 체코슬로바키아- 



퇴근후 식당에서 3,000원짜리 1식3찬의 식판저녁을 먹었다. 찐 밥, 달짝지근한 김치, 갓 버무린 부추, 단물 뚝뚝 떨어지는 연근조림. 그리고 간이 전혀 안된 싱겁고 미지근한 콩나물국.(난 국 미지근한 건 정말 못 참아, 국이 따끈하던지 시원하던지 해야지, 미지근한 건 싫어. ㅠㅠ 어쨌던 한 끼 때웠다.)
  
집에 돌아와 모레 있을 발표준비를 위해 독거하는 방 책상에 앉아 자료를 검토하고 있는데 왼쪽 발가락이 따끔하면서 간지럽다. 모기다. 책상아래다. 하긴 오늘 날씨 무척 덥더만, 드디어 모기가 출현했다. 2009년 처음 내 방에서 시비를 걸어온 녀석이다. 오른발 뒤축 아래부분으로 왼발등 가려운 곳을 비벼준다. 모니터 앞으로 모기 출현. 어 자슥 봐라. 몇 번을 모기잡으려고 손뼉을 짝짝 쳤는데 허탕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상조치를 취한다. 가만있자. 홈매트가 어디있지? 거실로 나가 책꽂이 제일 아래 칸에서 홈매트를 찾아냈다. 어 자슥들 어디 함 보자. 처절하게 복수를 해주지.. 음하하하, 벽에 홈매트 훈증기의 플러그를 꼽고 홈매트 한 개를 까서 훈증기에 꽂아 놓는다. 이로써 모기 소탕작전 착수완료. 열어놓았던 벽 유리창을 닫고, 방문을 닫아 두면 녀석들은 독 안에 든 모기, 아니 방안에 갖힌 모기, 곧 냄새에 못 이겨 후두득 방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어쨌던 모기이야기가 길어졌다. 

방문을 닫아 둔 채로 헬스장으로 향한다.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챙겨서.. CNN과 BBC에 채널을 맞추고 영어 히어링 연습을 하면서 속도는 5.5~6.7km/h를 올리고 내리고 하면서 걷고 가볍게 뛰기를 40분. 로마에서 영국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맨유와 스페인리그 우승팀 바르셀로나의 UEFA챔피언스리그에 관한 보도. 맨유의 호날두와 바르셀로나의 메시를 비교하면서.. 잠시 뒤이어 박지성 선수의 사진이 CNN에 나오면서. 결승전에 박지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 박지성이 챔피언리그 결승전에서 뛰게 되는 최초의 아시아인이 될 것이라고.. 박지성..내가 알아봤어 한일월드컵 때 포르투칼하고 시합할 때 수비수를 2명인가 3명인가 제끼고 슛, 그대로 골인되는 장면.. 눈에 선하다.. 어하튼 결승전 뛰고 멋진 골 넣어서 한국축구 역사에 한 획을 긋길.. 화이팅, 박지성..

아아 난 뛰려고 헬스장에 오나, 샤워하러 오나? 달궈진 몸에 시원한 물을 뿌리며 꼼꼼하게 비누칠해서 몸을 씻으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역시 땀내는 것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좋은 거야. 그런데 집에서 나올 때 수건 챙겨오는 것을 깜빡했다. 면도기, 치약, 치솔, 긴 목욕타월, 갈아입을 속내의, 셔츠까지 챙겼는데. 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다음 부터는 리스트를 적어서 체크해야되나. 깜빡깜빡할 때가 많다. 

이제 겨우 운동하는 폼만 잡고 있다. 습관을 들여야 한다. 습관을.. 저녁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서 30분씩이라도 걸어야지.
팔과 다리 근육에 메모리가 되도록..


우리는 결코 오래 살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니다.
설령 짧게밖에 살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짧은 인생을 어떻게든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는 자정이 다 되었더라도 거리로 뛰어나가는 것을 휴식이라고 생각한다. 약 1시간 정도 10킬로미터를 뛰고 나서 땀에 젖어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새로 태어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과 피곤함이 완전히 사라진다. 골치아픈 이런저런 정치적인 문제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달리는 중에 때때로 머릿속에 놀라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 "나는 달린다" 108쪽, 요쉬카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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