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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다. 우리집은 22층 아파트의 중간층이었다. 어느 날인가 까치가 우리집 아파트 앞베란다의 에어컨 실외기 지지대에 나무 막대기를 하나 둘씩 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제법 새집다운 모양을 한 까치집 한 채가 지어졌다. 그로부터 까치 부부 한쌍이 그 집에 살게 되었다.
이야, 세상이 까치가 우리집 베란다에 집을 짓다니.. 이건 길조(吉兆)야 길조..뭔 좋은 일이 있으려나. 아내와 나는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리고 날이 흐르면서 아내와 나는 정말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너무 궁금했다. 궁금하기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딸네미 역시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세 딸아이를 포함한 아내와 나는 언감생심 까치집을 들여다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냐고? 까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자신이 낳은 알을 쪼아 먹어버리므로.
우리가 이런 속설을 거의 팩트의 수준으로 믿게 만드신 분은 다름아닌 우리 엄니다.
"엄니, 좋은 일이 생길라나봐유, 아 글씨 까치가 우리집 베란다에다 집을 짓기 시작했지 뭐유."
"그리여, 뭐 좋은 일이 있을랑게비네. 근디 느그덜 절대 까치집 디다보믄 안된다아 잉-. 까치가 알 쪼사 먹응께. 알것제? 아그들한티도 단단히 일러라. 잉"
"알것구만유"
우리가 베란다에 나가 유리 문만 간단히 열어주면 까치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야말로 라이브로 볼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만들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까치부부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진 것은 어머니의 지침(?) 덕분이었다. 솔직히 내 마음은 까치집을 수십 번도 더 디다보았다. 어쨌든 아내와 나와 아이들은 까치가 우리집에 지덜 집을 지어준 것이 고마워서 칙사대접(?)을 한다고 무척 신경을 썼다.
그런데.....
정작 궁금했던 분은 우리 엄니다. 우리 집에서 2km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계시는 어머니가 집에 들르셨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자 마자 베란다로 달려가셨다. (그래 달려가셨다고 해야 맞어..)
그러시더니..
우리의 금기..불문율..(아아 이를 워쪄)
베란다 유리창을 활짝 열어 째끼시더니...
까치집앞에 쪼그리고 앉으신 다음,
두손을 베란다에 대시고
방충망에 요리조리 왼쪽 얼굴을 댔다, 오른쪽 얼굴을 댔다 하시면서..
마치 수사관이 범행 현장을 면밀히 조사하는 것 같이
까치집을 예리한 눈초리로 째려 보시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만면에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우리 엄니
입꼬리를 올리시고
세상에 좋은 구경 혼자 하신 것 처럼
껄껄대시더니 손가락 다섯개를
무슨 야구감독 싸인 처럼 내게 보이신다.
"아범아, 알이 모두 5개여". 음하하하
"옛~ 다섯 개요?, 어디봐욧" 소리와 동시에
아내와 나는 베란다로 돌진.....
우와, 진짜 알이 5개네...
우리는 가슴을 벌렁거리며 베란다에서 지나가는 새의 못볼 것을 본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웃어댔다.
아아 그 순간,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나, 까치 한마리
베란다 유리 바깥쪽에서 공중을 선회하며
베란다로 돌진하여 몇차례를 위협한다.
이건 완전히 뿔난 가장(家長)이다.
- "니들 왜 우리집 훔쳐보는 거야? 혼 좀 나볼래?"
엄니와 아내와 나..
까치의 위협에 거실로 쫓겨 들어오는데
내 팔뚝에 소름이 쫙 끼치며 짧은 순간 지나가는 생각 하나.
- 아아 사람이나 짐승이나 제 새끼는 목숨보다 소중한갑따.
어쨌던 그 일로 금기를 깨버린 우리,
그러니까 어머니와 아내와 나, 그리고 세딸네미, 그리고 뒤늦게 합류하신 우리 아버지까지
틈만 나면 까치 알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했다. 언제? 물론 아빠까치 일 나간 다음에..
그리고 얼마후 까치부부에게는 새끼까치 3마리가 태어났다.
까치 가족들이 떠난 후에도 오랜 동안 까치집을 그대로 두었는데 해가 바뀌어 언젠가 까치 한 마리가 잠시 다녀간 것 외에는
집보러 오는 까치가 없었다.
그래서 논의한 끝에 까치집 철거(아래 사진)에 들어갔는데..
세상에....
까치가 자기 몸의 몇배나 긴 막대를 어떻게 입에 물고 와서 집을 지었는지..
또 한번 입이 벌어졌다.
그나저나
까치야, 잘 살고 있니?
까치들 소식이 무척 궁금하다.
이런 건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안 찾아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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