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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사진에세이) 비(雨) 구경 그리고 에쿠니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by 하남이 201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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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세이) 비(雨) 구경 그리고 에쿠니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전날 저녁 9시 뉴스에 남부지방에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예보대로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집중력도 좋아진다. 비에 흠뻑 젖은 나무와, 줄기와 잎들이 생동감이 넘친다. 비에 젖은 도로도 생기가 있어 보인다. 처마밑에서 비가 땅에 그려내는 동심원의 무리들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가뭄이 심했는데 이번 비는 메마른 대지를 흠뻑 적시고 낮아졌던 댐의 수위를 높힐 것이다. 논과 밭에 물을 더하고 작물에 생기를 더하게 할 것이다.  논에 물대고 모내기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졌지만 마음은 넉넉해졌다.
 





비갠 오후 구름에 덮혀 있는 산자락의 모습도 싱그럽다. 

 


일본 여류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도 비구경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녀의 작품 '당신의 주말을 몇개입니까?"를 꺼내서 "비"편을 다시 읽어본다. 비 내리는 날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을 읽으며 차를 마시고 손톱도 깎고 전기면도기를 청소하는 에쿠니의 남편 모습이 평화롭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녀도 여유로워 보인다.  

"비를 좋아해서, 비가 내리면 비를 본다. 창문을 열어놓고 바로본다. 빗소리를 듣고 비의 내음을 맡는다. 친정에서는 엄마도 여동생도 그랬다. 조그만 마당과 건너편 지붕, 낯익은 풍경이 비에 젖는 모습을 본다. 빛나는 아스팔트, 낮게 가라앉은 하늘, 물기를 담뿍 머금고 이파리 하나 하나를 떠는 나무. 우리는 다들 비를 좋아해서 비가 내리면 창문을 열어놓는다. (중략)

"비는 몇 번이든 상관없이 보고 싶다. 아침에 내리는 비와 오후에 내리는 비, 밤에 내리는 비가 저마다 다르고 창문에 따라서도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을 때면 먼지 낀 공기의 냄새도 맡고 싶고, 질리도록 쏟아질 때면 그 시원스런 냄새를 맡고 싶다.

"비 내리는 날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을 읽으면서 차를 마신다. 크림을 듬뿍 넣은 시나몬 티다. 때로는 신문을 펼처놓고 손톱을 깎기도 하고, 전기 면도기를 청소하기도 한다. (중략) 비 내리는 날은 특히 화면과 나 사이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남편의 등이 조그맣고 뾰족한 산처럼 보인다."

"비는 소염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령 감정의 기복(예를 들면 연애)이 어떤 유의 염증이라고 한다면 비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가 내리면 많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중략) "뽀얗게 물기를 머금은 숲이 정말 아름다웠다." 한밤에 내리는 비는 유독 상쾌하다. 침대에 무릎을 껴안고 앉아 창밖에 내리는 비를 마음껏 바라본다. 비에 깨끗하게 씻긴,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폐 속 깊숙이 흘러든다."                                               
                                                                                   -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中에서, 에쿠니 가오리-





저녁 뉴스에서 비 피해를 보도했다.

"남부 대부분 지역에 호우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부산 100, 제주 200밀리미터 등 하루 종일 강풍을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강한 빗줄기 속에 사고도 잇따랐습니다.

오늘 새벽 5시쯤 남해 고속도로 덕천IC에서 트럭 4대가 연쇄 추돌하면서 불이 나 4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습니다.
사고의 여파로 도로의 가로등과 방음벽 20여 미터가 시커멓게 녹아내렸습니다. 화물차에 실려 있던 수십 통의 인화 물질에 불이 붙으면서 인명 피해가 컸습니다. 또 오늘 낮 12시쯤에는 김해시 가락IC 부근에서 트레일러가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고 뒤집혔습니다. 뒤따라오던 트럭이 전복된 트레일러를 들이받으면서 1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100mm이상 폭우가 쏟아진 경남 남해군에서는 마늘 축제장의 전시관 지붕이 비로 인해 내려앉아 행사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전북 군산 앞바다에서는 35살 유 모 씨 등 선원 3명이 타고 있던 어선이 실종됐습니다. 강풍으로 항공기도 무더기로 결항됐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항공기 12편을 포함해 국내선 항공기 30여 편의 운항이 취소됐습니다.
MBC 뉴스 윤파란입니다. "

30분쯤 지난 후 지역뉴스에서는 장대비로 인해 해안지역의 토사가 바닷가로 방류되면서 양식장의 전복이 폐사했고 곳곳의 도로가 유실되어 교통 혼잡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난 에쿠니의 수필집을 다 읽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by 하남이의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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