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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일상

[가족에세이] 접대오목, 접대알까기

by 하남이 2011.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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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헐헐, 아빠는 철부지

초등학생 하나, 중학생 하나, 고등학생 하나. 우리 집은 딸만 셋이다. 세 아이가 학교에 가는 아침시간. 아내는 아이들과 한바탕 등교전쟁을 치른다. 

- 올리, 빨리나와. 야휴 넌 머리감고 씻는데 한 시간 걸리냐?

- 에린, 넌 아직도 자고 있냐? 일어나 어서.

- 보니, 아까 깨웠는데 얜 여기서 자고 있네. 일어나 어서  

올리, 에린, 보니 세 아이들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아침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둥 마는둥. 비 온다고 우산 하나씩 챙겨서 세 녀석 등 두드려주고 잘 다녀와 하고 인사하면 아내의 아침전쟁 끝~~.


딸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내 특기 중에 하나는 “아이들 약 올리고 울리기”였다. 그럴 적마다 아내에게 치도곤을 많이 당하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장난치고 깔깔거리고 꼬집고 깨물고 안고 엎고 태우고 뛰고 쫓고 쫓기고, 그건 어린 딸을 가진 아빠에게 최고의 행복이었다. 아이들 손 깨무는 버릇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다. 어머니도 손녀딸은 물론이고 남의 집 어린아이들을 보면 습관적으로 아이 손을 깨물었는데 나의 DNA 어딘가에는 그 유전자가 있을 것이다.    


세 딸 가운데 12살짜리 막내딸 보니가 가장 샘이 많고 승부욕이 강하다. 보니가 일곱 살 때였을 거다. 토요일 오후 집에서 쉬는 날 보니를 데리고 거실에서 “쌀보리게임”을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두 손을 모으고 이긴 사람은 진 사람의 양손사이에 잽싸게 주먹을 넣었다 빼야한다. 붙잡히지 말고. 이때 “쌀”하고 외치면 공격하는 사람은 주먹을 잡히면 안되지만 “보리”하고 외치면 진 사람의 양손에 주먹을 붙잡혀도 상관이 없으므로 쌀과 보리를 번갈아 가면 술래를 골려주는 게임이다.

놀 때는 막내딸과 나 사이에 정신연령의 차이가 없다. 한 치의 양보란 있을 수 없다. 당연히 "보니"가 술래가 많이 됬고 나는 주로 공격을 했다. 술래를 많이한 보니가 서서히 약이 올랐다. 드디어 게임은 싸움이 되고 이내 일곱 살짜리 딸네미와 마흔두살 잡수신 아빠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말로 설득하기엔 녀석이 너무 약이 올랐다. 장난끼가 발동한 나는 막내딸의 옆구리며 배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마치 인디언 처럼 “호이호이” 추임새도 넣어가며 막내딸의 약을 올린다.


- 아이고 둘 다 똑같아 똑같에

아빠와 딸의 싸움(?)을 보다 못한 아내의 힐난이 이어진다. 씩씩거리며 달려드는 막내딸. 그러나 아직 나하고 해보기에는 체구도 작고 힘도 딸린다.


- 아직 멀었다. 욘석아 어디 감히 아빠를 이겨 먹을라고?

일방적인 아빠의 공세에 제 마음대로 해보질 못하니 독이 잔뜩 올라 씩씩거리는 막내딸.

- 잘한다 잘해.

보다 못한 아내의 경고가 계속되고. 아아 맞어. 이제는 전략적으로 당해줘야 할 때다. 그래 때려라 때려. 방어태세를 의도적으로 허술하게 한다. 막내딸은 이때다 싶어 주먹을 움켜쥐고 아빠의 옆구리며 배를 사정없이 때린다. 하지만 분이 쉽게 풀리지 않는것 같다. 한참을 얻어 맞다가 아아 안되 이렇게 당하면 안되지. 자 이제 아빠의 2차 공격이다. 다시 아빠의 공격을 당하는 막내딸 거의 울음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 아휴, 이젠 고만 좀 해요. 애 성질만 나쁘게 만들어요.

아내의 마지막 경고가 떨어진다. 엄마의 지원사격을 받은 막내딸 사정없이 내게 공격을 해대고. 지금이다. 이때쯤 미션임파서블의 탐쿠르즈가 임무를 마치고 보트를 타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가는 것처럼(이때 나오는 미션임파서블의 시그널 뮤직 정말 멋있었어)나도 거실에서 안방으로 날세게 도망친다. 안방의 문을 확 닫고 시건장치 보턴을 잽싸게 눌렀다. 이제 안심이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잠긴 줄만 알았던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헐크표정을 한 막내딸이 방안으로 들이 닥친다. 아아 맞어 시건장치가 고장났었지. 완전 낭패다. 난 지금껏 그렇게 무서운 막내딸의 얼굴을 본적이 없다.


-으아악

아이가 내게 달려들자마자 갑자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느껴지는 심한 통증. 막내딸의 필살기. 이빨로 머리를 벌벌 떨며 내 팔뚝을 물어 뜯었다. 역시 그 아빠의 그 딸. 깨물기 DNA가 녀석에게 심어진게 틀림없어.

- 아빠 평상시 내 손 깨물었을 때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욧. 자, 이제 맛 좀 보시지욧.
순간 내 가슴을 스치며 지나가는 통증보다 더한 순간적인 배신감.

- 야 너 내 딸 맞어? 아빠가 좀(아니 조금은 아니다. 그래 많이) 놀렸기로서니 아빠 팔뚝을 이빨로 물어뜯냐?
그날의 승부는 막내딸의 통쾌한 역전승이었다.


접대오목, 접대알까기 아빠의 미션임파서블


“아빠, 그거 하고 우리 오목(五目)둬요.”

토요일 오후 컴퓨터 앞에 앉아 밀린 보고서 쓰느라 정신없는 내게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딸 보니가 말했다.

“응” 

난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빠 오목 안 할거죠.”

저녁 식탁에서 입이 삐죽나온 보니가 “아빠는 맨날 말만하고 오목 안할려고 그러죠?”

- 아아 오늘 우리의 막내딸 보니가 오목이 땡기시나보다.

“그래 저녁 먹고 오목두자”



거실에 19X19짜리 바둑판을 펼치고 12살짜리 보니와 내가 마주 앉았다.

“보니야, 우리 내기하자. 한 판에 200원씩 지는 사람이 이긴 사람한테 200원씩 주는거다.”

“좋아요” 보니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내가 흑돌을 쥐고 보니가 백돌을 쥐었다. 한 수 한 수를 교환하며 말없이 수담(手談)을 나눈다. 어느 사이 내가 1수를 가하면 승패가 결정되는 지점이 눈에 훤히 들어온다. 하지만 거기에 두지 않고 엉뚱한 곳에 둔다. 몇 수를 더해가자 이번에는 막내딸의 백돌 한 수만 첨가하면 5개가 일렬로 되는 지점이 발견된다. 그러나 거길 막지 않고 무모하게 한쪽이 막힌 흑돌 3개짜리를 네게로 만들어 그럴듯하게 공격하는 시늉을 한다. 그때 회심의 미소를 짓는 막내달 보니. 결정적으로 백 한점을 아까 그 자리에 두며

“이겼어요. 여기 다섯 개”

“아이고 그걸 못 봤네” 정말 열받는 것처럼 연기를 하며 마지못해 200원을 건네는 척한다. 입이 째지고 좋아서 코가 벌렁거리는 우리 막내딸.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 둘째 에린이 기념으로 한 장 찍자면서 200원 건내는 장면을 카메라로 찰칵. 이쯤대면 완전한 접대오목이다. 이렇게 연달아 6판을 내리졌다. 아니 져줬다. 기세가 오른 막내딸 보니. 손가락으로 머리를 가리키며

“아빠 머리를 써요 머리를”


얘가 완벽하게 속아넘어 가고 있다. 벌써 건네진 돈만해도 1200원이다.

“야 보니야, 오목 안되겠다. 알까기 하자”


접대오목이 접대 알까기로 이어진다.

보니의 백돌 5개, 내 흑돌 다섯 개가 결전을 앞두고 바둑판위에서 서로 마주보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내가 선공이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검지아래에 넣고 흑돌의 엉덩이에 살며시 댄다. 상대편 백돌중 한 놈을 겨냥하여 엄지손가락을 순식간에 떼면서 백돌을 튕겨준다. 우왁! 조준이 안된 흑돌, 자신의 운명을 짐작했는지 백돌을 건드려보지도 못하고 바둑판을 벗어나 자살에 가까운 전사다. 이어지는 백돌의 공격. 역시 침착하게 힘을 조절하여 살살 튕겨서 바둑판 정중앙에 위치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작전 들어간다. 흑돌 네 개. 너희들 임자 잘못 만났다. 오늘은 완전 접대 알까기야. 무모한 가속과 어긋난 조준으로 순식간에 바둑판에는 백돌만 살아남았다.

“200원 내요.” 막내딸이 당당하게 전리품을 요구한다. 막내딸이 기세가 등등하다. 연달아 여러판을 졌다. 아니 져줬다.

“다음에 도전 받아줄께요.” 승자의 행복한 미소를 날리며 보니가 번돈을 흔들어 보인다.


그날 막내딸은 나에게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아내와 나는 눈짓을 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아이가 아빠에게 오목둬요. 알까기 해요 할 때가 행복한 것이다. 이녀석도 중학생, 고등학생 되면 야간자율학습이다. 과외다. 독서실이다 해서 얼굴보기도 힘들테니까. "보니"야 언제든지 오목두고 알까기하고 싶으면 말해라.


자식이 좋아서 입이 째지고 코가 벌렁거리면 아빠엄마의 가슴은 코가 시큰 거릴 정도로 몇천 몇만배의 기쁨이 넘친다. 아이가 커서도 접대오목, 접대알까기 몇판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애들아 아빠랑 놀자 잉~~ 노라줘.  by 하남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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