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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글

김훈 <흑산>을 완독하고 독후감을 쓰다

by 하남이 2020.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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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매주 그렇듯이 아내와 함께 자주 가는 카페에 왔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아메리카노 한잔과 바삭하고 고소한 크로와상 한 개를 쟁반에 들고 계단을 올라 카페 2층 구석진 창가에 앉는다.

집을 나설 때쯤 내리던 진눈깨비가 기세 좋게 내리고 있다. 카페 건너편 낮은 언덕에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아내가 며칠 전부터 읽고 있던 소설가 김훈의 <흑산>의 끝부분 몇 장을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내게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이 책 다 읽어가 여보"

내가 빵집 쟁반에 까는 기름종이를 내어주고 아내는 거기에 몇 자 적었다.

올겨울 드물게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굵은 눈발로 변해 하늘과 땅사이로 마구 내달리고 있다. 흑산. 우연찮게 손에 잡혔고 결국 완독을 해냈다.

140여년전 일만명이 야소교를 믿다 죽임을 당했던 사실.

사학죄인이 된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되어 창대와 함께 신당 언덕에 앉아 한나절씩 바다를 바라보며 물고기떼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몰려가는지를 생각했고 물고기를 잡아 아가미와 비늘을 깊이 들어다 보며 훗날 자산어보를 지어냈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황사영

학자들의 깊이가 보였다. 천주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이 땅에서가 아니라 저쪽으로의 삶을 기대하며 점조직으로 복음을 전하고 이어지는 그들의 숨막히는 과정들로 가슴이 울렁거림도 느꼈다.

복음에는 양반도, 노비도 하나되는 기적이 있었다.

가난하고 애처로운 우리의 조상들

어느 누구 하나 게으름 피우는 이 없었지만 늘 없는 살림이었고 그 속에서도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술도 대접하고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마부였던 마노리 처럼 돈을 모아 목 좋은 자리에 주막을 차릴 희망을 꿈꾸던 곳.

이생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이를 꿈이 되어버려 아쉽다. 16세에 급제한 황사영의 맑고 깨끗함이 천주께서 주신 기쁨이었으리라. 배론에서 체포되어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되어 주님께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흑산은 정약전을 받아주었고

강진은 정약용을 받아 주었다.

그들의 아픔을 잠재우고 그들을 통해 학문이 깊어졌으니 이 또한 멋진 일이 되겠다.  흑산에 내 마음도 머물며 바다를 보고 물고기를 헤아리며 돛배를 타고 나가 고등어를 잡는 어부가 되어보았다.

읽는 내내 가슴 조이며 민초들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길에 함께 하게 되어 기뻤다.

이제는 마음을 내려 놓는다.  2020.2.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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