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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글

[리뷰] 어찌됐든 산티아고만 가자(청하, 권순호 이경욱, 조명찬)

by 하남이 2012.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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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찌됐든 산티아고만 가자(청하, 권순호 이경욱, 조명찬)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가 처음 <산티아고>라는 단어를 들은 것이 중앙일보 칼럼에서 였다. 정진홍 논설위원의 컬럼이었는데 그의 글에 애독자라서 특별한 느낌을 가졌지만 구체적으로 산티아고에 대해 내가 아는 지식은 전무했다.



정진홍 논설위원의 컬럼(중앙일보)



#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겠다고 집을 떠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 가는구나. 아빠가 어느 샘터에서 배낭을 내려놓은 채 마른 목을 축이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내 배낭에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이들의 상징인 조개껍데기가 두 개 달려 있는 까닭을 물어 이렇게 대답했지. “하나는 내 것, 다른 하나는 내 딸의 것”이라고. 그래, 나는 이 길을 너와 함께 걷고 있단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칠 때, 오래된 산골마을에서 너 또래 아이들을 만났을 때, 그리고 아름다운 숲길을 걷는 내내 아빠는 너를 떠올리곤 해.

 # “왜 그 길을 걸으려고 하는 건데?” 서울에서 떠나오기 전에 네가 내게 물었지. 솔직히 그때는 다 말할 수 없었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비로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단다. 그건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나고 또 만들고 싶어서”야. 벌써 십 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아빠는 이제껏 내가 제일 잘한 결정이 네가 태어나던 그해에 교수직을 그만둔 것이었다고 생각해왔어. 그러나 이제 그것을 바꿔야 할 거 같구나.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산티아고로 가는 이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결행한 일이라고.

 # 한 걸음 한 걸음이 인생이야. 아빠는 삶을 걸고 이 길을 걷고 있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은 사람은 수천, 수만 명이겠지만 내 발로 걸으면 그 길은 곧 나의 길인 거지. 지금 이 길을 걷는 아빠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발도 아프고 몸도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한 까닭은 내 안의 소리를 듣기 때문일 거야. 자기 속이 왜 우는지, 왜 웃는지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본 적이 별반 없었지. 그걸 듣고 아빠 자신을 용서하고 스스로 힘내라고 용기 북돋는 시간이기에 어쩜 이 길을 걷는 순간들이야말로 아빠 인생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어.

 # 나바레테라는 작은 마을을 지날 때였단다. 마을 입구에 옷 수선하는 곳이 있었지. 가시덤불에 잘못 들어가 겉옷이 여기저기 찢어져 이를 꿰매려고 문을 열고 들어섰단다. 아빠는 찢어지고 해진 옷을 벗어 짜깁기를 부탁했지. 키가 1m90㎝는 족히 될 것 같은 주인은 재봉틀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내 옷을 깁기 시작했어.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좀 지저분하게 기운 곳엔 이런저런 문양을 덧대주기까지 했어. 그런데 정작 옷 수선비는 한 푼도 받지 않는 거야. 그리 넉넉해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야. 순례자에겐 그렇게 한다는 거야. 오히려 내게 사과 두 개를 주기까지 했어. 그의 이름은 훌리안 엘리아스 깔보였지. 하지만 깔보라고 깔보면 안 돼.(웃음) 아빠는 두고두고 그의 이름을 기억할 거야. 그는 평생을 재봉틀 하나 붙잡고 살았겠지만 그야말로 작은 성인이었단다. 생 훌리안 엘리아스 깔보라고 불러야 마땅할 만큼.

 # 아빠는 눈보라 치는 피레네도 넘고 태양이 작열하는 길도 지났단다. 때로 폭우 속에 걷고 모래바람 이는 광야를 지나기도 했지. 하지만 그 어떤 난관의 돌파보다도 놀랍고 위대한 것은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것이란 점을 깨닫는단다. 감동에는 크고 작음이 없어. 모든 감동은 작은 데서 나오지만 세상을 움직일 만큼 커진단다. 사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이 세상에 또 있겠니?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다. 내 딸아! 너도 세상을 감동시키는 사람으로 자라거라. 그것이 아빠의 바람이고 또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멋지게 되는 거야. 언젠가 먼 훗날 네가 아빠 나이 비슷한 때에 이 길을 걷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빠가 경험했던 이 감동을 너의 길에서 느끼고 배우기를 바라. 물론 그 감동은 내가 다 전할 수 없는 거란다. 네가 너의 두 발과 가슴으로 이 길을 걸음으로써 스스로 얻게 되고 알게 되고 배우게 되며 그것을 너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단다. 아빠는 다만 그 진실을 알려줄 뿐이란다. 그때 아빠가 걸었던 발자국은 사라졌겠지만 너를 생각하며 걸었던 마음의 자취만은 이 길에 남아 있을 거야.



# 야고보 사도가 걸었던 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길을 가고싶다.





 

그저 막연했던 산티아고가 청하출판사에서 펴낸 <어찌됐든 산티아고만 가자>라는 책을 읽고 좀 더 텝스를 들어갈 수 있있다..

 


산티아고.

산티아고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도 <야고보>의 에스파냐어식 표기이다. 성령 강림 이후 다른 사도들처럼 야고보 역시 사마리아와 유대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심지어 이베리아 반도(스페인)까지도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44년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을 탄압하던 헤로데스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체포되어 파스카 축일 전날 참수형으로써 순교를 하였다.

 

야고보의 유해는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안장되었으나,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에 대해서는 행방이 묘연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9세기 즈음에 하늘에서 한 별빛이 내려와 숲 속의 한 동굴을 비추어 사람들이 그 안으로 가보니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야고보의 유해는 에스파냐의 서북부 지역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장되어 모셔졌고, 당시 국왕 알폰소는 그 묘지 위에 150년에 걸쳐 웅대한 대성당을 건축하였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의 유골함이 전시되어 있다.

 

그 후 844년 이베리아 반도에 세력을 뻗친 이슬람교 세력에 로마 가톨릭 세력이 대항하기 위하여 일어난 클라비로 전투에서 야고보가 에스파냐군 앞에 나타나는 기적을 일으켜 이슬람군을 무찔렀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그에 대한 신심이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대폭 커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금세 세계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 야고보의 생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히브리어: יעקב, 그리스어: Ιάκωβος, 라틴어: Iacobus, ? - 44)는 사도,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고, 사도 요한과 형제 관계이다. 야고보라는 이름의 유래는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이다. 또 다른 사도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동명이인이라 혼동을 피하기 위해 흔히 ()야고보라고 부른다.

 

 

사도들 중 가장 먼저 순교하였고, 기독교의 성인으로 기려지고 있다. 로마 가톨릭에서의 축일은 725일이며, 동방 정교회에서의 축일은 430일이다. 회화에서는 종종 말을 타고 한 손에는 순례자의 종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무어인을 무찌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야고보는 제베대오와 살로메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로, 동생 요한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갈릴리 호숫가에서 어부로 일하고 있다가 예수를 만나 같은 직업의 다른 형제인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함께 그의 부름을 받았다. 예수의 부름을 듣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님을 따라갔다(마태 4,21-22).

 

복음서에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 하루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또는 그들의 어머니라고도 함)가 예수에게 하늘 나라에서 자신들이 각각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예수가 너희는 너희가 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구나! 너희는 내가 마시고자 하는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 며 묻자 그들은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예수는 죽음의 잔을 마시고 고통의 세례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의 오른편이나 왼편에 앉는 특권은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위한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다른 사도들이 이 형제의 야심에 분개하자, 예수는 그들에게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훈계하여 권력의 목적은 봉사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마태 20,27-28).

 

또한 두 형제는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은 불친절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하고 말했다. 예수는 그 말을 듣고 그들을 호되게 질책하였다(누가 9,54,


(이상 위키백과 참고)





# 나만의 여행, 나만의 색깔이 있는 여행을 나는 즐기고 있는가?


같은 장소를 여행하더라도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의 고유한 색깔이 있다. 나만의 여행을 즐기려면 여러사람들이 제시하는 아이디어나 경험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된다.




무조건 준비없이 생면부지의 장소. 일테면 산티아고 같은 곳을 맨몸으로 부딪혀보는 것이다. 전부 공부하고 가면 재미없지 않은가?


남들이 볼 때 이 힘든 여행길에 '뭐 하러 무겁게 그런것까지 들고 왔느냐"는 핀잔 따위가 뭐가 중요하랴. 중요한 건 내 즐거움과 내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많은 이들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책을 읽고, 인터넷을 헤집으며 여행을 위한 정확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그저 하나의 힌트이지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간혹 여행을 준비하며 다른 사람이 먼저 다녀온 여행기를 보고 그것을 마치 정답처럼 맹신하고는 정작 본인의 여행은 하지 못하고 남이 하고 온 여행을 그래로 답습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중략)

나 역시 여행을 잘 즐기고 있는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쓸데없는 경쟁심과 조급증이 이 여행알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게 해주는 것도 같았다.


<어찌됬든 산티아고만 가자>는 여행의 핵심 키워드와 지침을 정확히 제시해준다.


꼭 한 번 일독을 권한다.




"어느 여행지를 가느냐, 어떤 일정으로 어떤 여행을 계획하느냐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길 위에서 가지게 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고과 소통과 교감이 그 여행을 진정으로 빛나고 값진 여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광장에 누워 한참 동안 산티아고 대성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로 말이 없던 우리는 그제서야 서로를 안으며 축하했다."


"나와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 나의 친구들아."



그리스찬으로 아고보가 선교를 위해 걸었던 800킬로미터의 여정을 한 번 걸어보고 싶다. 나만의 색깔있는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 함께 걸어줄 친구들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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